인플레이션 현황
인플레이션 논쟁 검토 필요
코로나 충격과 맞물린 일시적 인플레이션 우려를 딛고 예전처럼 디스인플레이션 기조가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지금의 인플레이션 둔화가 일시적인 조정일 뿐 앞으로 고물가 추세가 본격화될 것인지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간의 인플레이션 논쟁들을 되짚어보며 향후 과제나 시사점을 고민할 필요도 있겠다
1. 인플레이션과 합리적 태만
선진국 기준으로 오일쇼크 이후 50여년 만에, 우리나라 역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직면한 인플레이션은 그간의 경제나 금융시장 환경에 큰 도전을 제기했다. 따라서 향후 인플레이션 혹은 디스인플레이션의 전개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그동안 인플레이션 충격 과정에서 논의되던 이슈, 즉 인플레이션의 발생 원인과 성격, 또 지금의 물가 반락 추세의 동력이나 지속 여부 등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번 충격을 계기로 물가에 대한 이른바 ‘합리적 태만’(rational neglect)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이를 극복해 나갈 정책 및 경제체제의 정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겠다. ‘합리적 태만’은 물가 향방을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2. 인플레이션의 발생 과정
인플레이션이 부각된 2021년 중반까지는 주로 코로나發 ‘일시적’ 현상으로 평가받았다. 코로나 충격이 다소 진정되던 2021년 초반부터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는데, 코로나와 관련된 공급차질, 또 재택 위주 생활에 따른 공산품 소비 급증이 이를 주도했다.
이러한 공급차질 문제는 일시적 성격이 강한 만큼, 향후 사태가 진정되며 공급망이 복구되고 수급 왜곡도 해소됨에 따라 물가도 진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상적으로 공급 충격이 해당 부문의 상대가격 변화에 국한되고 타부문으로 물가 전가가 제한될 경우에는 단발성 공급교란이 일단락되면서 물가가 빠르게 진정되는 패턴을 보여왔다.
따라서 美 연준을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초반에는 대부분 사태를 관망했다. 단, 일부 신흥시장에서는 원자재 및 환율 불안으로 물가폭등 속 금리인상에 착수했다. 하지만 대규모 경기부양책 등과 맞물려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부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에 힘입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여 전후 사상 최대 규모의 통화 및 재정부양책이 동원되면서, 그로 인한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부상한 것이다. 특히 초반에는 주로 공급 차질 및 수요 전환(서비스 > 재화)에 따라 재화(상품) 물가가 상승세를 주도했으나, 점차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속에 서비스 부문으로 전이되었다.
이후 경기부양책 효과가 퇴조하고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대형 공급충격이 겹치면서 경기는 다시 둔화되었지만, 전체 물가는 더욱 급등했다.(‘스태그플레이션’ 양상) 또한 미국을 필두로 코로나 충격이 완화된 이후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에 따른 실업률 하락 및 임금 상승 압력이 확산되면서 ‘임금-물가 악순환’ 우려도 대두되었다
3. 인플레이션 관리 위한 통화 긴축 본격화
이후 점차 인플레이션의 성격에 대해 ‘항구적’ 시각이 확산되며 각 중앙은행의 공세적 통화긴축이 본격화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21년 중반까지는 인플레이션이 주로 공급 차질이나 수급 불균형에 기반한 ‘일시적’ (transitory) 현상으로 평가되면서 주요국의 통화긴축도 보류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 인플레이션이 더욱 강화되면서 대규모 경기부양책과 수요압력에 결부된 ‘항구적’(permanent) 인플레이션 시각이 득세하면서 공세적 통화긴축에 착수했다. 특히, 항구적 인플레이션의 대표론자 Lawrence Summers(2021)는 미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주목,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부양책은 GDP갭을 절반 정도 메웠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GDP갭의 3배에 이를 정도”라고 지적, 인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했다.
반면, 일시적 인플레이션 시각의 Paul Krugman(2021)은 “인플레이션은 통화완화나 재정 정책 영향이 아니라 주로 공급차질 장기화 영향”이라며, 통화긴축 전환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인플레이션이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면서, 그간의 ‘저물가 체제’가 점차 ‘고물가 체제’로 전환(“regime shift”)하고 있다는 관측이 확산되기도 했다.
사실 1970년대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의 디스인플레이션 양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예 디플레이션 경사를 보일 정도로 극도의 저물가(물가안정) 체제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제 공급 충격은 물론 수요 압력까지 가세하며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됨에 따라 1970년대식 물가체제 전환 가능성에 대비한 공세적인 통화긴축 요구가 확대되었다.
저물가 체제에서는 특정 물가충격이 상대가격 변화에 국한되면서 타 부문 물가로의 전염 효과가 제한되지만, 고물가 체제에서는 물가간 상관성이 높아지며 극심한 물가 변동을 야기한다. 따라서 저물가 체제에서는 물가가 목표치에서 벗어나더라도 통화정책의 용인 여지가 큰 반면, 고물가 체제에서는 물가 안정을 위한 통화정책의 선제적 대응이 중요한 것이 일반적이다
4. 디스인플레이션 시작
기저효과와 공급차질 개선 등에 힘입어 2022년 중반 이후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인플레이션 충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솟던 물가가 2022년 중반 이후 에는 세계적으로 둔화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2~3%대로 복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 둔화(disinflation)는 무엇보다 그동안 높았던 물가로 인한 逆 기저효과가 작동한 데다 단계적으로 유가 등 공급차질이 완화된 영향으로 평가된다. 물론 아직도 중앙은행의 물가목표를 상회하고 있는데다 최근 디스인플레이션 흐름이 다소 약화되고 있긴 하지만, 연내 물가가 추가 둔화되리라는 전망이 주류이다
이에 공급차질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던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시각이 재부상하기 시작했다. 사실 공급 악화는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를 동시에 설명하며, 반면 공급 개선은 물가 하락과 경기회복을 견인함으로써 이른바 ‘연착륙’(soft-landing)을 유도할 수 있다. 특히 항구적 인플레이션 시각이 주목하던 임금-물가 악순환이 부재한 가운데, 필립스 곡선도 상향이동 및 경사화의 흐름을 접고 기존 행태로 복귀하는 모습이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역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 곡선(Philips Curve)은 코로나 초기 낮은 수준에서 완만한(flattening) 우하향 패턴 시현했다. 그러다 이후 경사화(steepening) 및 상향이동의 흐름을 보이면서 항구적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야기했으나, 최근 급속히 하향안정되며 코로나 이전 경로로 복귀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행태에 뚜렷한 변화가 없는 가운데, 공급차질 개선에 힘입어 물가둔화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관측하는 전문가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5. 여전한 '기대'인플레이션 위험
그러나 항구적 인플레이션 시각에서는 인플레이션 기대 안정의 중요성에 주목을 하고 있다. 최근의 디스인플레이션에 유가 하락이나 공급차질 개선이 큰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통화긴축을 통한 수요 및 인플레이션 기대 억제 영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저물가 체제에서 고물가 체제로의 전환 가능성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 기대인데, 실제로 단기 인플레이션 기대가 급등하면서 물가 불안을 자극하기도 했다.
다행히 중앙은행의 단호한 반인플레이션 전쟁으로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가 억제된 가운데 단기 인플레이션 기대도 다시 안정화되고 있지만, 임금 및 서비스 부문 위주로 ‘끈적한’(sticky) 물가압력이 이어지면서 물가체제의 전환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 과거 인플레이션 경험을 보면, 인플레이션 안정화 성공에 평균 3.2년 소요되었다.(IMF)
6. 인플레이션 변동 원인, 임금보다는 이윤 행태
인플레이션(디스인플레이션) 동력과 관련해 수요와 공급 등의 거시적 측면 외에도 미시적, 구조적 차원에서 임금과 이윤의 역학관계도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 그동안 물가 변동에서 임금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에서 주로 임금에 관심이 집중 되었지만, 이번에는 임금 못지않게 이윤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이다.
가령, 비금융기업의 실질총부가가치 단위당 물가에서 노동비용과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9~2019년 각각 56.0%, 13.1%에서 2020~22.2Q 44.6%, 40.1%로 반전되었다. 특히, 산업 집중 및 경쟁 약화로 기업 가격결정력이 상승한 가운데 물가 상승을 폭리 (profiteering) 기회로 활용하는 ‘탐욕 인플레이션’(greedflation)이 쟁점화되었다(Weber 2023). 이런 시각에서는 최근 이윤 급증에 대한 견제가 강화되면서 물가가 둔화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1970년대 인플레이션에서는 노동비용이 주요 동력이었던 반면, 지금은 ‘이윤 주도’(profit-driven) 인플레이션으로서 이번 속성의 차별성에 주목하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7. 인플레이션 전망과 시사점
‘물가안정기’는 인플레이션이 경제주체의 일상적 경제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로서, 물가에 대한 ‘합리적 태만’(rational neglect)의 시기였다. 이는 대체로 ‘저물가 체제’와 부합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코로나 이전이나 대공황 처럼 ‘디플레이션’으로의 경사 경향으로 이어질 때는 문제가 된다. 따라서 고물가 혹은 인플레이션 체제와 마찬가지로 디플레이션 체제도 ‘물가불안기’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 공급차질 개선에 힘입어 디스인플레이션 양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물가 안정의 지속 여부를 자신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물가에 대한 경계심이 지속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물가에 대한 경계는 ‘양방향’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인플레이션 지속 여부 못지 않게 코로나 이전과 같은 디플레이션 위험의 재개 여부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향후 물가 향방을 가늠하는데 있어 단기적인 공급 여건이나 수요 및 경기 향방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구조적 측면의 물가 불안요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간 세계화와 기술혁신, 양호한 인구구성 등에 기반한 ‘공급순풍’이 점차 지정학 갈등과 고령화, 에너지 전환 등과 맞물려 ‘공급역풍’으로 반전하고 있다
앞으로 수요 측면의 물가압력 완화로 추가 물가불안은 억제될 수 있지만, 구조적 공급역풍을 감안할 때 기존 물가목표(2% 내외)로 복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공급 유연성이 저하된 상황에서는 물가목표 준수를 위해 무리하게 통화긴축에 나서기보다는 3% 내외의 물가를 용인할 때 정책 운용의 여지가 확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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