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과 배터리
한국 배터리 시장 영향
먼저 바이든 재선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짚어보면 기존의 배터리산업과 관련한 제도나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2기에도 IRA 전기차 구매 세액공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우리 배터리 기업들의 현 미국 내 시장 지위도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친환경 에너지·산업 전환 촉진 기조도 이어지면서 배터리, 태양광, 풍력 등을 대상으로 하는 생산세액공제 (AMPC) 제도 역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AMPC 수혜로 인해 미국 내 투자 규모를 늘리고 있는 우리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 수익률이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입장에서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은 트럼프 재집권이 한국 배터리산업에 미칠 영향이다. 상당수의 미국 내 신규 배터리 투자들이 현재 선거 구도상 공화당 우세 지역에 밀집되어 있어 IRA 폐지는 어렵겠지만 행정부 권한 사용을 통한 지원 규모 축소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Agenda 47’ 등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정강으로 비춰볼 때 내연차 대상 규제가 완화되면서 미국 내 전기차 보급 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이러한 시나리오가 실제 작동한다면 우리 배터리산업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① 국내외 투자
트럼프 재집권 시 가장 우려되는 점은 IRA 지원 규모 축소로 인한 국내외 투자 위축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배터리 3사가 2023년 현재 미국에서 가동 중인 생산 CAPA는 약 117GWh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발표한 미국 투자 계획들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2027년에 약 5배 늘어난 635GWh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 단행은 IRA 배터리 요건, 생산세액공제 등에 따른 IRA 기대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따라서 트럼프 재집권 이후 IRA에 법 폐지, 지원 규모 축소 등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면 미래 이익을 기대하며 단행한 대규모 미국 내 투자들의 전면적인 재조정이 불가피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에서 내연차 규제 완화 등 전기차 보급 속도 조절 정책을 본격화한다면 이 부분 역시 우리 기업의 투자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 다. 특히 전기차 성장 둔화는 내연차, 하이브리드카 등으로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가능한 완성차 업계와 달리 전기차 수요에만 80% 가까이 의존하는 배터리 기업의 투자 위축을 더 가속화할 것으 로 전망된다.
전기차 침투율이 아직 10% 미만에 불과해 향후 성장 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 배터리 시장마저 트럼프 2기 출범 후 수요 둔화기를 맞는다면 우리 기업은 미국을 넘어 국내외 전반의 사업 규모 축소, 투자 위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②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
한국 배터리산업이 최근 미국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서는 등 성과가 개선되고있었던 기저에는 IRA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트럼프 재집권이 한국 배터리 산업에 미칠 두 번째 효과는 IRA 지원 규모 축소에 따른 미 시장에서의 성과 악화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IRA 변화 발생 시 IRA 배터리 요건 시행으로 인한 시장 점유율 상승, 생산세액공제에 따른 수익 증대 등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수요 둔화기를 맞아 시장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미국 배터리 시장은 IRA 효과에 힘입어 한국 배터리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발(發) IRA 리스크가 현실화된다면 향후 거둘 것으로 예상됐던 기대이익의 상실은 물론 현재의 미국 시장의 지위까지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IRA 이후 미국 시장 점유율 상승 등의 성과 개선이 나타난 것은 분명하지만, 분석의 엄밀성 관점에서는 추세 변화만으로는 IRA와 성과 개선 간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 마찬가지로 법 폐지, 지원 규모 축소 등 IRA의 변화가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에서의 실적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전망도 두 변수 간의 인과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논리적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보완을 위해 산업연구원은 이중차분법(Difference-in-Difference) 등 계량경제학 방법론을 이용하여 IRA 전기차 세액공제와 우리 기업의 미(美) 시장 내 배터리 판매량 간의 인과성 분석을 시도했다. <표 5>에서 서술한 것처럼 산업연구원의 추정 결과에 따르면 ① 두 변수 간에는 인과성(Causality)이 존재하고, ② 두 변수 간의 인과적 영향의 크기(Magnitude) 또한 유의미한 수준(미 시장 판매량 26% 증가)으로분석됐다.
정리하면 트럼프 재집권 시 IRA 법 폐지, 지원 규모 축소 등의 변화가 발생한다면 한국 배터리산업의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3. 공급망
바이든 행정부가 제정한 IRA는 미국의 탈중국 배터리 공급망 구축 의도를 담고 있다. 중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미국에서 대당 7,500 달러 상당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우려기관(FEOC) 제도가 2024년부터 부품, 2025년부터 핵심광물에 적용 될 계획이므로 IRA 이후 중국 외 지역으로의 공급망 다변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트럼프의 대중국 견제 기조상 트럼프 집권 시 무역장벽 강화로 탈중국 배터리 공급망 정책이 한 층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트럼프 재선 후 IRA 폐지로 전기차 세액공제 배터리 요건 자체가 무효화된다면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정책 방향에 심대한 후퇴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입법과정에서의 공화당 의석 우세로 인해 트럼프가 집권하더라도 폐지보다는 행정부를 통한 지원 규모 축소로 귀결될 것으로 보여, IRA 배터리 요건에 담겨 있는 탈중국 공급망 구축 방향성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IRA의 중국 공급망 배제 원칙을 더 엄격하게 적용할수록 전기차 세액공제 수혜 차종 수가 줄어드는 경향성이다. 올해 초에 발표된 미국 에너지부의 IRA 세액공제 수혜 차종 명단을 보면 전년도 43개에 비해 크게 감소한 19개 차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도에 각각 40%, 50%였던 핵심광물 요건 및 부품 요건의 준수 비율이 2024년도부터 50%, 60%로 상승하면서 중국 공급망 배제 부담이 강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재집권 시 IRA를 통한 중국 배제 공급망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트럼프가 계획하고 있는 IRA 지원 규모 축소라는 방향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탈중국 공급망 구축 정책 강화는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로 작용할 것으로 보 인다. 글로벌 배터리산업이 워낙 중국 광물과 소재 의존도가 높다보니 우리 역시 IRA 배터리 요건을 더 엄격하게 규정할수록 요건 충족이 어려워진다는 점이 위기 요인이다.
반면에 세계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산 배터리의 공세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서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회요인을 최대한 활용하고 위기 요인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배터리산업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내재화율 제고에 더 나설 수밖에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면
글로벌 통상환경이 급변하는 시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배터리산업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회다. 정부·기업간 협력을 통해 미래 시장 선 점을 위한 차세대 소재 및 전지 개발 확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또한 IRA 지원 규모 축소 등으로 해외투자 위축이 우려되는 만큼 미래 배터리 수요 창출이 가능한 ESS, 전기선박, UAM 등에 대한 신수요 창출 지원, 연계 기술 개발 지원 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배터리산업은 특성상 해외 생산 비중이 높다. 생산 CAPA 기준으로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 비중은 88%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배터리 기업은 전기차 공장 인근 설비투자가 불가피하고 국내 시장이 협소해 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해외투 자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한국 배터리산업이 지금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배경도 해외 시장에서의 높은 성과에 있다. 현재 중국 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과반의 점유율을 달성한 상태다. 중국 시장의 폐쇄성(중국 기업 98% 점유)을 감안하면 한국 배터리산업이 사실상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투자 환경이 어려운 시기를 맞아 국내 투자 촉진을 위한 정책 지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전력, 용수 등의 인프라 개선과 인력 양성 지원을 확대하여 국내 산업생태계 경쟁력 제고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내에 투자하는 배터리 기업에 대한 세제 및 보조금 지원 확대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각국은 첨단전략산업에 대한 보조금 전쟁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배터리산업은 자국 기업에 대한 천문학적인 보조금 지원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한 바 있고, 미국, EU 등도 각각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 임워크(TCTF) 등 대규모 세제지원·보조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우리의 경우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는 투자세액공제 정도뿐인 상황으로 최소한 경쟁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인센티브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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