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SS 전망
ESS, 이제는 산업의 주인공
ESS(Energy Storage System). 한동안 그 이름은 전기차 뒤편에서 조용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높은 에너지 밀도와 기술적 혁신이 필요한 EV(Electric Vehicle)에 비해,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장소에 설치되는 ESS는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정적인 기술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4년, ESS는 이제 더 이상 ‘전기차의 그림자’가 아닙니다. 전력 인프라의 효율을 끌어올리고,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올해 글로벌 ESS 시장은 전년 대비 +62.7% 성장하며 301GWh로 급증했습니다. 작년 185GWh와 비교하면 상상 그 이상의 성장입니다. 더 이상 전기차 산업만이 배터리 시장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는 것이죠. EV 중심으로 출발한 2차전지 산업은 이제 본격적으로 ESS 중심의 2차 르네상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폭발적인 수요 성장의 중심에는, 압도적인 기술력이나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특정 국가가 존재합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인 CATL을 필두로 BYD, Gotion, EVE 등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현재 전 세계 ESS 배터리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주요 3사는 고작 6%를 점유하는 데 그치고 있죠.
하지만 이 압도적인 중국 중심 구도가 예기치 못한 정치적 격변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꺼내든 ‘고율 관세 카드’ 때문입니다.
ESS 판도 흔드는 트럼프 고관세 정책
도널드 트럼프. 그의 정책은 언제나 논란과 관심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돌아오자마자 미국 제조업 보호와 대중국 견제를 위한 ‘관세 강화’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트럼프 2기의 관세 정책에서 가장 강력한 타격을 받은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배터리 산업, 그 중에서도 ESS용 배터리입니다. 그의 정부는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대해 무려 132.4%의 고율 관세를 매겼습니다.
이 중 82.4%는 기존 관세, 여기에 추가적으로 50%가 더해진 것입니다. EV용 배터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EV용은 123.9%(73.9%+50%)입니다.
그런데 이 관세율이 단순히 ‘세금 부과’의 수준을 넘어서는 이유는 바로 ESS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가격’**에 있기 때문입니다. ESS는 고정형 저장장치로, 에너지 밀도보다는 가격 경쟁력, 안정성, 수명이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ESS에는 LFP(Lithium Iron Phosphate) 배터리가 주로 사용됩니다. 이 LFP는 삼원계 배터리에 비해 단가가 훨씬 낮습니다. KWh당 가격은 LFP는 60~70달러 수준, 삼원계는 100달러 전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ESS 시장에서 중국이 승기를 쥔 이유는 바로 ‘싸고 튼튼한’ LFP 배터리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LFP 배터리가 고율 관세를 맞으면서 ‘싸다는 장점’을 잃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숫자로 보는 관세의 충격 – ESS 수입가격 시뮬레이션
ESS 시스템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다양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IBKS 보고서에 따르면, ESS Container System의 평균 단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 재료비 + 가공비: KWh당 80달러
- 운송비: KWh당 5달러
- 관세에 따라 추가되는 비용 (ESS 수입가 시뮬레이션):
- 관세 10% 시: 총 93달러
- 관세 40.9% 시: 118달러
- 관세 64.9% 시: 137달러
- 관세 82.4% 시: 무려 151달러
이처럼 고율의 관세가 ESS 가격을 급격히 올려버리면서, 수입 제품의 매력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 현지에서 ESS를 생산하면 어떨까요?
- 미국 현지 생산 원가: KWh당 176달러
- IRA의 AMPC 보조금(45달러) 적용 시: 실질 단가 131달러
놀랍게도, 이제는 미국에서 생산하더라도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오히려 저렴하거나 비슷한 수준이 됩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생산 전략과 공급망 재편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 기회의 문은 열렸다
자, 이제 질문은 이겁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보고서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LGES)과 삼성SDI는 각각 전체 매출 중에서 ESS 비중이 10.1%, 17.6%에 달합니다. 즉, 이들은 단순한 전기차 배터리 업체가 아니라, 이미 ESS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LGES는 2025년 4월부터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ESS 생산(SOP)을 시작하며, ESS용 LFP 라인 가동도 본격화합니다.
- 삼성SDI는 2026년까지 한국 내에서 LFP를 양산하고, 2027년부터는 미국 현지 생산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간 한국 배터리 기업은 삼원계 배터리에 강점이 있었지만 LFP는 중국이 장악한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ESS 시장 중심으로 무게추가 이동하면서, 한국 기업들도 LFP 라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죠.
즉, 고율 관세라는 외부 변수가 한국 기업에게는 ‘중국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지막 창’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EV vs ESS, 중국의 패권은 무너질까
지금까지의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 데이터를 보면, 중국 기업의 장악력은 여전히 매우 강력합니다. 아래는 2023년 대비 2024년 EV·ESS 총합 인도량입니다:
CATL | 382 | 491 | +28.5% |
BYD | 157 | 192 | +22.3% |
LGES | 137 | 128 | -6.6% |
SDI | 58 | 48 | -17.2% |
특히 눈에 띄는 건 한국 기업의 점유율 하락입니다. 반면, 중국 EVE, Gotion, CALB 등은 ESS 중심으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상승 중입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2024년까지의 데이터입니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본격적으로 2025년부터 강행됩니다. 그때부터는 미국 내 생산이 이루어진 한국 기업들이 반격의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관세는 찬스이자 리스크이기도 합니다. 보고서가 지적하는 위기 요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북미 생산 설비(CAPEX) 및 운영 부담
- 여전히 높은 원재료 중국 의존도 (LiPF6, 흑연, 리튬 등)
- IRA 보조금의 정책 지속성에 대한 불확실성
- LFP 기술 내재화 미흡
특히 중국산 원재료 의존 문제는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IRA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원재료 비율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오히려 중간 단가가 오르고 미국 내 경쟁력도 약화됩니다.
‘기회의 창’은 열렸고, 2025~2026년이 갈림길
지금 이 순간은 한국 배터리 산업에 있어 결정적 분기점입니다. ESS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고, 중국의 독주가 ‘정치적 외풍’에 의해 위협받는 유일한 타이밍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 창은 영원히 열려있지 않습니다.
- 2025~2026년, 북미 생산과 소재 내재화의 성패가 한국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가른다.
- IRA 보조금 체계가 유지되는 동안, 선제적 투자와 가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 중국 원재료 의존도를 줄이지 못하면, 아무리 미국에서 생산해도 관세 우회 혜택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전기차 시대의 후방에 머무르지 않고, ESS라는 차세대 전력 인프라의 주인공이 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시점입니다.
ESS 시장, 배터리 기술이 가져올 투자 기회
ESS 시장, 배터리 기술이 가져올 투자 기회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은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기술로, 앞으로의 에너지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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