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의 첨단, 버튜버
이 글은 ‘서브컬처 3부작’의 마지막 편입니다. 우리는 1편에서 드래곤볼과 귀멸의 칼날이 상징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비상과 확장, 그리고 2편에서는 원신과 니케를 통해 서브컬처 게임이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잡았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이 모든 흐름을 집약하며 가장 뜨겁고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 콘텐츠의 정점, ‘버튜버(VTuber)’를 다룹니다.
버튜버 : 픽셀로 된 스타
버튜버는 ‘픽셀로 된 스타’라 불리지만, 이들은 단순한 기술의 산물이 아닙니다. 매력적인 비주얼을 넘어서는 감정의 서사, 팬들과의 실시간 교감, 그리고 굿즈와 콘서트까지 아우르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새로운 형태입니다.
실존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무도관을 가득 채우고, 멜론 차트를 뒤흔들며, 전 세계 팬들의 눈물과 환호를 이끌어내는지를 들여다보면, 이 문화가 왜 더 이상 ‘오타쿠의 취향’에 머물 수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버튜버의 등장 배경과 기술적 진화, 실시간 스트리밍과 팬덤 형성 과정, 글로벌 산업으로서의 성장, 그리고 커머스·IP·콘서트로 이어지는 수익 구조까지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왜 우리는 실존하지 않는 존재를 이렇게 사랑하게 되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감정은 진짜였을까? 그 이야기는 진짜로 우리를 움직였을까? 이 글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서정적 대답입니다.
픽셀로 태어난 스타, 현실을 삼키다
"실존하지 않는 가수가, 단 16일 만에 1,000만 뷰를 돌파하고, 오리콘 차트 3위, 빌보드 재팬 HOT100 진입까지 해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경이로운 성과의 주인공은 실제 아이돌도, 가수도 아닌, 바로 가상 캐릭터였다. 홀로라이브 프로덕션 소속의 버튜버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음원 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 곡은 단지 서브컬처 팬들만이 소비한 콘텐츠가 아니었다. 일반 음악 팬들, SNS 이용자, 스트리밍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찾아 듣고, 뮤직비디오를 공유하고, 댓글을 달았다. 그렇게 축적된 기록은 우연이 아니었다.
단 8개월 만에 1억 뷰라는 엄청난 숫자에 도달했고, 이는 이제 버튜버가 콘텐츠 장르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문화적 현상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사건이었다. 가상의 존재가 실제 무대를 점령하는 이 광경은, 기술과 감정, 팬심과 플랫폼이 교차하는 새로운 문명의 형식을 보여준다.
버튜버는 누구인가, 개념과 진화
버추얼 유튜버(Virtual YouTuber), 줄여서 '버튜버'라는 개념은 2016년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개념을 대중화시킨 인물은 키즈나 아이다. 3D 모션캡쳐를 기반으로, 실제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실시간 반영한 캐릭터로 활동하며 ‘세계 최초의 버튜버’라는 타이틀을 자처했다.
유튜브에서 빠르게 주목을 받은 그녀는 데뷔 1년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후 일본 정부관광국의 홍보대사로도 위촉되며 사회적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이 성공은 단순한 유튜브 인기 크리에이터의 등장을 넘어, ‘버튜버’라는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의 시작이었다.
이후 홀로라이브(Hololive), 니지산지(Nijisanji) 같은 전문 기획사들이 등장하면서 버튜버는 단일 크리에이터가 아닌 하나의 기획된 IP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은 각 캐릭터에 개별적인 세계관과 배경 설정을 부여하고, 음성 연기와 트래킹 기술을 기반으로 방송을 진행한다.
기술적으로는 모션캡쳐, 페이셜 트래킹, 보이스 필터링 등이 조합되어 고도의 몰입도를 만들어낸다. 시청자는 단지 스크린 속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실시간 인터랙션'은 기존 콘텐츠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한 감정 몰입을 제공한다.
스트리머에서 아이돌로 발전
초기의 버튜버는 유튜브에서 게임을 하거나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 콘텐츠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점차 영역은 확대되었고, 오늘날의 버튜버는 종합 엔터테이너이자 아이돌로서 기능한다. 음원을 발표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오프라인 콘서트를 열고, 굿즈를 판매하고, 팬미팅을 개최한다. 더 이상 개인방송 크리에이터에 머물지 않는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열린 '이세계 페스티벌'은 8분 만에 1차 예매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총 15,000석이 모두 판매되었다. 미국 LA에서 개최된 홀로라이브 EN의 오프라인 콘서트 ‘Connect the World’는 예매 시작 10분 만에 5,000석을 매진시켰고, 온라인 유료 스트리밍을 포함해 총 25,000장이 판매되었다. 이는 현장 참여와 디지털 스트리밍을 동시에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팬덤’의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였다.
호시마치 스이세이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그녀는 2025년 2월, 일본 무도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고, 이 무대는 단지 버튜버가 실현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연출로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무대 디자인, 조명, 안무, 그리고 감정선이 살아있는 곡 해석까지.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실보다 더 진정성 있는 감정의 파동을 이끌어낸다. 이는 곧, 팬심이 실존 여부가 아니라 감정의 진정성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버튜버, 스트리밍 판도 바꾸다
팬데믹은 전 세계 사람들을 집에 머무르게 만들었고, 이는 실시간 스트리밍 산업의 전례 없는 성장으로 이어졌다. 유튜브 라이브, 트위치, 니코니코 등의 플랫폼은 각종 콘텐츠를 소비하는 새로운 무대가 되었다. 이 가운데 버튜버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술 기반 캐릭터이지만, 실시간으로 팬들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콘텐츠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YouTube의 슈퍼챗 수익 기준으로 상위 10명 중 7명이 버튜버였고, 이는 단순한 조회 수가 아닌 실제 지갑을 여는 충성도 높은 팬층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팬들이 자발적으로 방송을 요약하고 편집하는 '키리누키' 문화는 신규 유입을 가속화했다.
숏폼 중심 플랫폼인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이러한 클립이 유통되며 버튜버는 다양한 연령층과 비서브컬처 소비자에게도 다가가게 된다. COVER, ANYCOLOR 같은 기업은 이러한 팬덤 중심의 유통 생태계를 보호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수익화를 유도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크리에이터 산업이 아닌 IP 중심 콘텐츠 산업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버튜버, 이제는 하나의 IP
사람들은 종종 버튜버가 유튜브 광고 수익이나 슈퍼챗을 주 수입원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COVER와 ANYCOLOR의 재무 자료를 보면 전체 매출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내외에 불과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굿즈 판매, 라이선스, 콘서트, 협업 상품 등의 부가사업에서 발생한다.
즉, 실시간 방송은 IP의 노출과 팬덤 형성의 수단일 뿐이고, 진정한 수익은 이후에 이어지는 소비에서 창출된다.굿즈는 단지 팬심의 표현 도구를 넘어, 감정적 연결의 실체다. 피규어, 아크릴스탠드, 봉제 인형 같은 오프라인 제품부터, 보이스팩, 디지털 일러스트, 캐릭터 메시지 같은 무형 상품까지.
이 모든 것은 ‘팬이 IP와 함께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제조원가가 낮고 수요가 반복적이며, 한정판 구성은 희소성을 더해 가격 민감도까지 낮춘다. 특히 디지털 굿즈는 판매가 곧 이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COVER와 ANYCOLOR는 매 분기 40~60%에 달하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
버튜버 산업의 확장성
이 산업은 일본을 넘어 글로벌로 뻗어나가고 있다. 미국의 아이언마우스는 2024년 한 해 동안 2,600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세계 랭킹 5위에 올랐고, 대한민국의 플레이브는 멜론 스트리밍 10억 회를 돌파하며 '빌리언스 클럽'에 입성했다. 이세계아이돌은 2주간의 팝업스토어에서 38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더현대서울 최고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뿐만 아니다. 미국 LA 다저스는 2024년 홀로라이브와 공식 협업을 통해 ‘Hololive Night Collaboration’을 진행했고, 경기 전 버튜버가 등장해 응원가를 부르고, 경기 내내 IP 연계 연출을 이어갔다.
이 패키지 티켓은 전량 매진되었고, 오타쿠를 넘어 메이저 스포츠 팬들까지 사로잡은 결과였다. 이제 버튜버는 단지 일본이나 한국의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적인 콘텐츠 산업의 유력한 축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실존하지 않는 존재에게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들은 픽셀로 그려진 캐릭터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기술, 그리고 팬들의 사랑이 쌓여 있다. 단지 모니터 안의 인형극이 아니다. 이것은 감정의 세계이고, 연결의 서사이며, 하나의 진짜 우주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가짜잖아.”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전해준 감정은 진짜였다고. 그리고 진짜인 감정은, 결코 작지 않다고. 버튜버는 서브컬처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가 던질 질문은 하나뿐이다. “오늘은 누구를 좋아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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