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확실한 환율
환율 전망 공식이 맞지 않는 이유
첫째, 수출이 증가 전환했음에도 이에 상응한 원화 강세가 부재하다. 2004~05년 국제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인 외환시장 개입으로 원화가 약세를 띠었던 사례를 제외하면 이례적이다. 지금은 약세 유도 개입을 하고 있지도 않다.
둘째, 61개 신흥국 달러표시 국채금리(가중평균)와 미 국채금리간의 스프레드를 보여 주는 'JPMorgan EMBI global spread'와의 관계는 2023년부터 깨져있다. 이 스프레드는 미국(선진국)으로부터 신흥국으로 자금유입을 나타내는 것으로 통상 금융시장 risk-on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되어 왔다. 한반도 지정학적 위험이 명명(labeling)되거나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디커플링은 역시 이례적이다.
셋째,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고 있음에도 원화가 약세이다. 과거에 관계가 틀어졌던 시기는 2006~07년으로, 국내 증시 외국인 순매도에도 불구하고 환헤지 목적의 단기차입 급증으로 이례적으로 원화가 강세를 시현했던 구간이었다.
이를 제외하면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 행태와 원화 강세가 장기간 동행해 왔다는 점에서 최근의 흐름은 이례적이다. 상관계수를 높이려면 6개월 시차를 두고 달러/원이 움직인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렇게 해도 상관계수는 0.439에서 0.526으로 올라가는 정도다. 통계적 유의성이 없으므로 “우기는” 것 밖에는 되지 못한다.
최근 20여년 간의 시계열 내에서 단기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기에 일시적이라고 해석하고 결국은 연내 원화 강세가 도래한다고 전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수 있을까. 구조적 변화가 있는지, 외환시장 흐름에 영향을 주는 다른 변수가 있는지 가설을 세우고 의심하며 점검해야 한다.
이제 이하에서는 최근 환율 전망이 어려워진 세 가지 가설을 소개하겠다. 어느 하나의 영향이 확실하고 크고 작고에 연연하지 않고 여러 거시적 환경을 점검해본다는 차원에서 보시길 바란다.
가설 1. 달러화의 위상 변화 여부
앞서 주의환기 차원에서 달러/원을 예로 들어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달러화 결정 변수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첫 번째 가설로 보유 및 거래 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이 강화되었을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참고한 사이트는 Atlanta Council의 “Dollar Dominance Monitor” 로, 1) 전세계 외환보유액 내 달러화 비중, 2) 전세계 OTC(Over-the-counter) 외환거래액 내 달러화 비중, 3) 달러화 인보이싱 비중 등을 모니터링한다. 3)은 변화가 크게 없기에 본 포스팅에서는 1)~2)의 흐름만을 다룬다
첫째, 전세계 외환보유액 중 달러화 비중은 2000년 1분기 71.4%에서 2023년 4 분기에는 58.4%로 내려왔다. 동 비중이 달러화 가치와 연동되면서 2017~18년을 전후해서는 달러화 우위의 시대가 끝났으며, 전세계적인 달러화 의존도 축소 (de-dollarization)가 가시화될 것이라 주장하는 진영도 있었다. 외환보유액 내에서 달러화 비중은 꾸준히 하락했지만 2018년 이후로는 동 현상이 약달러를 심화시키지 못했고, 되려 달러화는 강세 전환하였다.
둘째, 전세계 OTC 외환거래액 내에서 달러화 비중은 2010년 이후 다시 확대되어 2022년에는 88.4%에 달한다. 여기서의 외환거래액이란, 현/선물, FX swap 등 모든 외환거래를 총망라한다. 여기까지의 흐름만을 본다면 달러화 위상 변화의 문제는 주된 변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가설 2. 미국이 전세계의 자금을 흡수하나
최근 미국 증시가 호황을 지속하는 한편, 미국에 상장된 ETF가 자산배분의 형태로 자리매김하는 등 미국이 전세계 투자자금을 흡수하면서 달러화가 강해지고 있다는 의심도 해볼 수 있다. 단순한 추이 및 동행성을 가늠하기 위해 미국 금융계정 수지(financial account balance: 금융계정으로의 순유입)와 국제수지(경상수지와 금융계정의 합)를 달러화 지수(DXY)와 함께 그려 본 그림을 참고해보자.
해당 그림에서는 금융계정으로의 순유입이 확대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 거주민의 해외투자(직접, 증권, 기타투자) 대비 외국인의 대미 직접, 증권, 기타투자가 8,907억 달러 많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증권투자 수지의 경우는 2023년 한 해 동안 1.16조 달러 흑자를 기록할 정도이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흐름이 강달러에 일조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미국으로의 금융투자가 확대되는 추세가 달러화 가치의 상승과 하락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며, 통계적 유의성도 없어 이것 역시 주된 요인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미국 자산수요가 주된 변수였다면 2006~08년에도 달러화 강세가 나타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경상수지 적자국(-CA)은 당연히 금융계정에서의 순유입(+FA)을 통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룬다(-CA+FA=0). 그림 8의 국제 수지가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지만 2000년 이후 평균은 0에 가까운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한편, 경상적자를 뛰어넘는 금융계정 순유입이 이루어지는 것은 달러표시 자산의 실수요이지만, 반드시 통화 강세를 유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실수요 이외에 기대 변수가 가미된 투기적 수요(비상업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설 3. 불확실성 확대
불확실성 확대가 안전자산인 달러화 수요를 자극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9~11은 Baker, Bloom & Davis의 2016년 연구를 바탕으로 뉴스기사를 통해 경제정책 불확실성을 측정한 지수와 달러화, 원화를 도해한 것이다.
정책 불확실성은 글로벌 금융위기(2007~09), 유럽 재정위기(2011~12), 미-중 무역분쟁(2018~19)과 코로나19(2020~)를 거치며 그 수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달러화 지수도 우상향 하는 흐름을 보인다. 불확실성이 낮았던 금융위기 이전 환경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주목할 점은 2018년의 미-중 무역분쟁 발발을 계기로 탈세계화 흐름이 가속화되었고, 2020년 코로나19 및 공급망 교란을 거치며 더욱 심화되었을 가능성이다.
또한 고려할 것은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전망의 불확실성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코로나19가 금융위기보다 심한 경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 그러한 경기 침체를 2개월 만에 극복할 수 있다는 점, 과도한 정책대응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 등을 쉽게 예견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예측하는 데 있어 1) 인플레이션 자체뿐 아니라 2) Output gap과 3) 재정정책 강도에 대한 엄청난 추정오차(forecast error)가 있었다는 논문이 있을 정도이다.
경제전망의 추정오차 확대는 Citigroup과 Bloomberg에서 집계하는 Economic Surprise Index의 극심한 변동성 확대로도 귀결되었다. 코로나19 초입에는 이코노미스트 전망치를 완벽히 빗나가는 경제지표들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최근 들어 서프라이즈 지수가 기존 변동 범위인 ±100 이내로 수렴하면서 추정오차가 줄어드는 모습이지만, 경기예측과 별개로 “정책”은 더욱 예상하기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이 떨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연준이 언제 금리를 내릴 지 예측하기 어렵다. 금리가 인상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연준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준은 개별 위원들의 경제전망을 전제로 어느 정도의 금리 수준이 적절한지 점을 찍는 와중에서도, 불확실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통화정책이 어떠한 형태와 강도, 혹은 시차를 두고 경기와 물가에 영향을 미칠지 사실 모르기 때문에 파월 의장도 “데이터가 보여 주는 대로(let the data show)”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견지 중이다. 이처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risk of unknown of unknowns)이 상존하면서 나스닥의 사상 최고치 경신이라는 극단적 위험선호와 달러화 강세라는 안전자산 선호가 공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원화는 이러한 불확실성에 유난히 민감한 통화이다.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의 상승이 한편에서는 국내 정책 불확실성 이슈로도 전이되는 경우도 관찰된다. 예를 들어 2019년 8월의 불확실성 지수 급등은 국내 요인보다는 미-중 무역분쟁 격화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 참여자들은 비교적 관계가 명확한 변수에만 집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주요국 중앙은행 통화정책 정상화 정도의 차이를 반영하는 선진국 간의 국채금리차와 유로화/엔화와의 관계일 것이다.
불확실성이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해보면, 두 가지 요인이 해소되어야 강달러(혹은 원화 약세) 일변도의 외환시장 구도가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미국 연준의 금리인하 착수일 것이고, 더욱 중요한 다른 하나는 코로나 19가 가져온 왜곡에서 벗어나 경제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언제일 지는 모르지만 코로나19 이전의 통상적인 경기사이클로의 복귀일 것이다.
[여담] 실질실효환율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상대국과의 물가차이를 고려한 “실질(real)” 통화가치의 변동은 국내 거주자가 국내 생산품 소비를 수입산으로 대체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된다. 양자간 환율(bilateral currency rate)로 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자간 교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국의 교역비 중(실효; effective)을 고려한 실질실효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의 절상/절하 여부로 이를 판단한다.
특정국의 실질실효환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국내 거주자가 국내 소비를 수입수요로 대체하여 경상흑자가 줄거나 적자 전환될 가능성을, 반대로 하락하면 경상흑자 전환 내지는 흑자 확대를 시사하는 것이다. 실무에서는 특정국의 환율의 고평가/저평가 여부를 가늠하기 위해 역사적 평균을 계산하고 이를 기준으로 비교한다.
일반적으로는 데이터가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BIS 등 많은 기관에서는 명목환율 을 실질환율로 변환할 때 소비자물가지수(CPI)를 사용한다. 사실 CPI만 사용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GDP디플레이터나 (제조업 부문의) 단위노동비용도 할인 변수로 이용된다. IMF Working Paper(2017)에 따르면, 국내-수입품 대체효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할인 변수가 CPI가 아닌 단위노동비용이라는 점을 실증분석을 통해 규명하고 있다.
이는 CPI나 GDP 디플레이터가 비교역재의 물가를 반영하여 실제 교역부문의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왜곡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주장을 받아들여, OECD에서 계산하는 분기별 실질실효환율을 다음 페이지 그림 16~19에 걸쳐 그려 보고 단위노동비용 기준으로도 고평가 여부를 계산한 결과를 한번 보자.
한국 원화는 CPI가 디플레이터인 경우, 외환시장 개방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역사적 평균 대비 3.6% 저평가되어 절상 압력이 있는 것으로 계산되지만, 단위노동비용을 기준으로 하면 4.1% 고평가된 것으로 계산된다. 2023년 연말과 4분기 원/달러 환율 1,288원과 1,321원을 기준으로, 달러 대비 절상률만큼 저평가/고평가가 해소된다고 가정하면 단위노동비용 기준 균형환율은 1,341원과 1,375원으로 계산된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탈세계화 본격화로 기준점이 바뀐 것을 고려하여 이 때부터의 단기 평균을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는 1,300원과 1,333원이다. 같은 맥락에서 달러화의 고평가 여부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비자물가를 디플레이터로 썼을 때 달러화는 역사적 평균에 비해 매우 고평가지만, 단위노동비용을 기준으로 장기 평균(세계화 진전과 후퇴 구간을 모두 포함)과 비교했을 때는 현 수준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논의를 전개한 것은 어떤 기준이 정답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단지 역사적인 관점에서 일방적인 강세로 보이는 달러화의 흐름이 설명 가능한 것인지, 1,300원 중심의 원/달러 환율이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인지를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해 보기 위함이라는 점을 명심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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