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팬덤 정치와 우려
미국 대선과 팬덤 정치
2024년 미국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트럼프 (Donald Trump) 전 대통령의 팬덤(fandom) 정치가 주목받고 있다. 팬덤은 특정 유명인의 팬들이 구성한 커뮤니티를 의미하며, 감정적인 애착을 바탕으로 한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에 기반한 팬덤 현상이 주목받았으며 최근에는 정치 영역에서도 부상했다.
1. 트럼프식 팬덤정치
‘팬덤 정치’는 특정 정당 혹은 정치인에 대해 형성된 팬 커뮤니티가 강한 정서적 유대와 정체성을 서로 공유하는 현상이다. 이들은 특정 정치이념을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경우가 드물고, 커뮤니티 구성원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부의 규율에 따라 정보를 수용하고 소통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가 정치인으로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팬덤 집단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사용한구호이며, ‘MAGA’는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이 됐다.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2021년 1월 6일 미국 의회 의사당 점거 폭동이 발생하면서 팬덤 정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확산됐다. 바이든 집권 후 미국 사회에서 MAGA 현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나, 현재 팬덤 정치가 다시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이다. 이하에서는 미국 팬덤 정치의 특징과 쟁 점을 살펴보고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한다.
2. 트럼프 팬덤정치 특징
① 소셜 미디어 활용
트럼프는 성공한 사업가로 2004년부터 2017년까지 14년간 ‘어프렌티스(Apprentice)’라는 리얼 리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방송인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트럼프는 여느 정치인보다도 언론 매체 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잘 이해하고 활용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소셜 미디어 홍보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트럼프는 이미 광위한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었다(트위터 1,900만 명, 페이스북 1,800만 명, 인스타그램 500만 명).
트럼프의 선거운동은 ‘빅시드 마케팅(Big-seed marketing)’의 사례로 평가됐다. 통상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전파는 특정 시점 중단되지만, 거대한 팔로워 집단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 메시지 전파가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다른 경선 후보뿐만 아니라 민주당 후보에 비해서도 저비용 고효율의 선거운동을 달성할 수 있었다.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선거운동을 상징하는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이다. 이 문구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빌 클린턴 (Bill Clinton) 전 대통령도 언급했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화, 일자리, 세금, 불법 이민 등의 문제로 쇠퇴하고 있으며, 한때 위대했던 미국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이 문구를 사용했다. 약어인 ‘MAGA’는 해시태그 형태로 소셜 미디어에 빈번하게 노출됐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자국민 우선주의(nativism) 라는 평가를 받았다.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이민을 줄이고, 전통적 가치를 장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트럼프가 이민자를 차별하거나 무슬림 사회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공격적인 발언 스타일은 지지자를 늘리는 데에 일조했다. 또한, 글자 수 제한이 있는 소셜 미디어는 세부적인 설명을 할 필요 없이 간략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중문화에서의 ‘팬’과 유사한 방식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에 참여하며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 경향은 ‘MAGA 운동(MAGA movement)’으로 지칭됐다. 트럼프에 대한 강성 지지자들은 일종의 사회 운동 형태로 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② MAGA 팬덤의 특징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MAGA 공화당원’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도둑맞았고, 바이든의 당선은 정당하지 않다”는 문항에 동의하는 공화당원으로 정의됐으며, 전체 공화당원의 약 33%가 이 범주에 해당했다.
MAGA 지지자의 인구통계학적 특징은 80% 이상이 백인이며, 60% 이상이 남성, 기독교 신자인 것으로 조사된다. 또한 50% 이상이 연간 소득 5만 달러 이상, 65세 이상의 은퇴자이며, 30% 이상만이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2016년 이후 주요 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해 100%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인 백인 남성 노동자들은 미국 사회가 번성했던 과거에 대한 집단적 향수를 공유했으며,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조건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소외된 무력한 존재로 간주 하는 경향이 있었고, 미국이 국민의 요구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표출했다.
미국 팬덤 정치에 대한 논련과 우려
팬덤 정치는 지지자들이 직접 견해를 표현하고, 회합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효능감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팬덤 정치가 적대 감정을 증폭하고 극단적인 사고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실제로 팬덤 참여자들은 사실 확인 없이 정보를 공유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 됐다.
1. 가짜뉴스와 음모론 확산
큐어넌(QAnon)이라 불린 음모론 지지 집단의 등장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팬덤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졌다. 큐어넌은 2017년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사이트의 정치토론 게시판에서 발생한 집단으로,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이 국제 인신매매 조직에 관여하고 있으며, 트럼프가 이들에 맞서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 믿는다.
2020년 10월 미국 하원에서 큐어넌을 비판하는 결의안을 의결할 정도로 음모론 확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에 큐어넌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정치인 2명이 하원의원에 당선 되어 논란이 되었고, 2021년 1월 미국 의회 점거에 가담했던 참가자들 역시 음모론을 추종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가수인 테일러 스위프트 (Taylor Swift)가 좌익 세력과 결탁한 선거 공작요원이며, 슈퍼볼 경기에서 바이든 지지 성명을 낼 것 이라는 음모론이 주요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가짜 뉴스와 음모론의 확산을 팬덤 참여자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팬덤 정치인이 왜곡된 사실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발견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큐어넌 계정을 리트윗 하고 음모론 지지자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발언하여 비판받아 왔다. 이와 관련하여 콜로라도주, 메인주, 일리노이주 대법원은 내란 선동 혐의로 트럼프의 대선 출마 자격을 박탈했으나, 2024년 3월 4일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트럼프는 경선 참여 자격을 유지하게 됐다
2. 정치양극과 문제
미국의 정치 양극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장기 적인 경기 침체, 9.11 테러와 이민자 문제, 금융위기 등으로 심화됐다. 이념과 인종 문제를 둘러싼 정당 간 갈등은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 팬덤이 공유한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미국 정치를 더욱 양극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팬덤은 지속적인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MAGA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MAGA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한다.
2023년 4월 트럼프가 여러 혐의로 기소됐을 때, 민주당원 중 89%가 트럼프의 혐의가 엄중하다고 생각했지만, 공화당원은 21%만이 동일한 의견을 보였다. 즉, 팬덤 내에서의 신뢰와 충성심이 다른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낳고, 상호 간의 적개심이 강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심화된 시기는 트럼프 집권 기간인 것으로 나타난다. 해당 시기 트럼프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의 국정 지지율은 90%에 가까웠으나, 민주당 지지자의 국정 지지율은 10% 미만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추세가 바이든 집권 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집권 기간 동안 80%p에 달했던 국정 지지율 격차는 최근까지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3. 한국 정치에 대한 시사점
국내에서도 팬덤 정치에 관한 관심과 논란이 증가 하고 있다. 팬덤 정치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며 대의정치를 보완하여 시민의 정치참여를 늘릴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에 팬덤 정치가 의회 민주주의와 정당 정치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의 미국 사례는 팬덤 정치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주체적인 참여를 증대시키기보다는 확증 편향을 강화하며, 비이성적인 집단행동과 음모론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팬덤 정치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애착에서 출발하여 혐오 정치를 낳고, 대중의 직접 참여로 민주주의를 확대하기보다는 특정 정치인의 권위를 강화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더욱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정치 양극화가 고조된 미국 사회에서 팬덤 정치의 문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쉽게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정파적 견해 차이가 아닌 ‘정서적’ 양극화와 신념의 불일치는 사실관계에 기반한 토론과 협의의 여지를 없애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 사례는 한국의 팬덤 정치 현황을 재평가하고, 그것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필요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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