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이며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를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핵심 품목으로 인식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면서 올해 10월 7일 미국 상무부는 첨단 반도체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명문화 하여 발표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반도체장비 수요 급증이 맞물려 최근 전 세계적 으로 반도체장비 품귀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반도체장비는 반도체 생산공정에 따라 크게 웨이퍼제조장비, 전공정장비, 후공정장비 및 부분품 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더욱 세부적으로는 반도체 8대 생산공정별로 분류할 수 있다. 웨이퍼는 반도체 의 재료가 되는 얇은 판이며, 전공정은 웨이퍼에 회로 모양을 새기고 깍아내는 핵심 공정이다. 전공정을 거친 웨이퍼는 이후 여러 조각으로 절단되어 개별 포장된 이후 성능 검사를 거쳐 출고되는데, 이 공정이 보통 후공정으로 분류된다. 최근 이종 패키징 기술이 주목받으면서 후공정에서도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가공단계가 추가되고 있으나, 보통 기술장벽이 가장 높아 국가별로 편차가 심한 공정은 전공정으로, 첨단 반도체장비 다수가 전공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반도체장비시장은 지정학적인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반도체장비 수요는 대부분 동아시아에서 발생하며, 특히 중국이 최대 수요국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기준 세계 반도체장비 수요는 1,027억 달러 규모로, 이 중 77.5%에 해당하는 796억 달러의 장비가 동아시아 3국(한국·중국· 대만)에서 소비되었다. 반면 반도체장비 공급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네덜란드 등 미·중 경쟁 구도에서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핵심 장비 공급을 독점하는 상위 5개 장비업체는 모두 상기 3국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들의 2021년 총매출액은 816억 달러로 동기간 세계 반도체장비 총구매액의 80%를 상회한다. 반도체장비시장은 기술장벽이 높아 신규 기업이 진입하기 매우 어렵고, 삼성·TSMC 등 글로벌 반도체기업은 기술적으로 검증된 업체와 장기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아 현재의 독과점 구도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특성은 교역 데이터에서도 나타난다. 반도체장비 3대 수출국은 미국·일본·네덜란드이며 3대 수입국은 한국·중국·대만이다. 문제는 3대 수출국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한국의 반도체장비 수입액 중 미국·일본·네덜란드 수입 비중이 77%를 상회하며, 특히 첨단 장비인 극자외선 (EUV) 노광장비의 경우 전량 네덜란드의 ASML사에 의존하고 있다. 장비 수급에 차질이 생겼을 경우 이를 대체할 수입처가 마땅치 않기에 한국 반도체산업은 근본적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장비를 놓고 미·중 간 무역분쟁이 심화되면서 반도체장비 수급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 10월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장비 수출제한 조치를 공식 발표하면서 중국에 소재한 한국 반도체 생산시설도 반도체장비 확보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반도체장비 수입은 2017~21년까지 연평균 30%의 높은 증가세를 유지해 왔지만 2022.1~6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하며 돌연 하락 전환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물류난과 중국 내 봉쇄정책이 완화된 시점에서 반도체장비 수입이 갑자기 감소한 것은 상당 부분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이 있다. 올해 10월 공식 발표가 있기 전부터 미국 내 주요 반도체장비업체를 대상으로 첨단 반도체장비의 대중국 수출 제한조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해당 조치가 반도체장비 교역 데이터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올해 중국의 반도체장비 수입이 돌연 역성장한 것은 EU(75.4%), 미국(40.4%), 일본(28.1%) 등 다른 국가들의 반도체장비 수입이 동기간 두 자릿수대로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반도체장비 교역에 지정학적 역학이 작용한 결과로 판단되며 추후 지속적인 교역 데이터 모니터링을 통한 추가 검증이 요구된다.
이처럼 미·중 기술경쟁 여파로 반도체장비 교역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 향후 안정적인 반도체장비 조달 및 첨단 장비 선점을 위해 미국 중심의 반도체 동맹(Chip4)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장 수입 대체 및 국산화가 어려운 첨단 반도체장비를 고려하면 Chip4에 참여할 당위성은 더욱 크다. 중국의 반도체산업이 14nm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는 것도 핵심 반도체장비를 확보하 지 못한 결과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Chip4를 통해 안정적인 반도체장비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반도 체산업의 사활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 Chip4를 통해 반도체장비 3대 수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R&D 투자를 병행하여 핵심 장비의 국산 화율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9년 연속 반도체 종합 2위, 메모리 1위 등 외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장비 부문 자급률이 낮아 상당수 장비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은 30%대 수준이며 특히 반도체장비의 국산화율은 20%로 추정된다. 이에 반도체 설비투자가 늘어날수록 핵심 장비 수입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를 최대 규모로 수입하는 중국과 반도체 수출국 미국,일본 등과의 상호 관계까 악화되면서 반도체장비 시장에 내재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반도체장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단기적으로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Chip4) 참여 및 장기적으로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 장비 다수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안정적인 반도체 장비 조달을 위해서는 동맹국과의 협력이 필수이다. 이에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중국의 반도체 투자가 어려워지면 한국의 반도체에 대한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Chip4 동맹을 통해 안정적인 수입처를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주 수출처인 중국이 대중국 규제에 의해 적절한 투자를 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안정적인 수급이 매출로 이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 IT 출하-재고 사이클이 2개월 연속 반등했다. 12월 발표된 산업활동동향 에서 반도체 출하는 전년대비 18.4% 개선된 가운데 재고가 13.0% 증가하며 출 하-재고는 반등 (+)의 영역에 진입했다. 연간 전망 자료에서 언급했듯 반도체 업 종 개선과 함께 전체 제조업 출하-재고 사이클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림 1, 2)와 같이 중장기적으로 KOSPI, 반도체 업종 수익률은 각각 전체 제조 업과 반도체 업종의 출하-재고 지표와 동행한다. 출하가 매출을 의미한다면 재고 는 가격 결정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출하-재고 지표는 기업 마진 환경을 대변한다 고 볼 수 있다.
지표를 출하와 재고로 나누어 봐도 이번 사이클의 반등은 재고 증가의 급격한 둔 화와 출하 개선의 콜라보다. 출하나 재고 한 편의 힘이 강하다기 보단, 수요 환경 개선과 기업의 재고조정 노력 동시에 작용했다 볼 수 있다. 업황 반등에 대한 기 대를 높이는 지표다.
그러나 반도체 수출 지표는 상반된 결과를 보인다. 11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대비 -28.6%나 감소하며 우려를 키웠다(그림 4). 이 같은 지표 상 괴리의 이유는 ‘실질’과 ‘명목’의 차이에서 온다. 재고-출하 지표 는 2015년 가격을 기준으로 하는 실질 지표, 수출은 가격 변동을 잡아내는 명목 지표다. 반도체 수출을 물량과 가격 지수로 분해하면 물량은 연간 +0.7% 상승했 지만 가격이 -27.3% 하락했다. 즉 실질 물량은 증가했지만 가격이 크게 하락하 면 서 실질과 명목 지표의 방향성이 달라졌다. 이는 우리나라 반도체 부진은 물량 보다 가격의 하락이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질 출하 지표의 개선이 Macro 환경의 개선과 맞물리고 있지도 않다. (그림 6) 과 같이 금리, 경기, 소비심리, 대외 요인을 고려한 Macro Factor Index는 11월 미국 물가상승률 둔화로 소폭 개선된데 그쳤다. 단기 글로벌 금리요인이나 반도체 수입 수요의 큰 Proxy인 ISM 제조업지수와 같 은 경제지표 압박이 크게 개선될 여지도 크지 않다(그림 7, 8). P와 Q가 모두 개 선되기 위해서는 수요 환경의 개선이 필요하기에 지금은 출하-재고 보다는 명목 의 수출 지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재고 수준이 10년 추세 수준을 크게 넘은 상황에서 지금의 출하 개선은 P를 고려하기 보단 재고를 방출하 기 시작한 데 따른 결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단기 실적 관점에선 악재이나, 중기적 관점에선 악성 재고가 빨리 방출되면 사이클 반등의 시기도 다가왔다는 의미다. 가격 문제와는 별개로 지난 20여 년 동안 재고사이클과 주가의 변곡점이 맞물려 왔던 이유다. 무엇보다 반도체 업종 주가는 선행성이 강하다. 과거 수출 기준 업황에 5개월 이 상 선행해왔다(그림 10). 하반기 반등의 여지가 보이면 주가는 연초부터 반응한 다. 그리고 시장은 업황의 바닥을 1분기 말에서 2분기로 점치고 있다. 이르면 이미 주 가는 바닥을 다지고 있는 단계일 수 있다. 기업들이 재고를 밀어내고 있는 시그널 이 보이는 지금 반도체 업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반도체 산업에 대해 책을 읽고 공부도 하면서 많은 리포트들을 읽었지만 개념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한국무역협회의 반도체 산업에 관한 리포트와 메리츠 증권의 최근 반도체 산업의 현황에 대한 글을 요약하였다. 한국의 반도체 시장과 대외리스크를 살펴보면 반도체 시장이 현재 좋지 못한 것은 사실으로 보인다. 중국의 투자가 재개되고 수급이 안정적으로 되면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는 2023년도 2분기부터 반등을 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 두 보고서를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참고자료
반도체 출하-재고사이클 반등 메리츠 증권 이종빈 연구원님,
최근 반도체장비 교역 동향 및 시사점 한국무역협회 강상지 연구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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