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뷰티, 새로운 도약
지난 해 하반기 수출액이 상반기를 상회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연간 수출액이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러한 성장세는 화장품 산업 저변의 확대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화장품 수출 기업 수는 2020년 7,564개에서 2023년 8,330개로 10% 이상 증가했다.
조선미녀와 티르티르 약진
가장 먼저 성장 주체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1차 글로벌 도약기가 LG생활건강, 아모레퍼 시픽 등 대기업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인디 브랜드(메이저 브랜드가 아닌, 신생 뷰티 브랜 드)가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4년 1분기 인디 브랜드의 수출액은 15억 5,000만 달러로 역대 1분기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대기업의 수출액은 전 년 동기 대비 16% 감소한 반면, 중소기업은 30%나 늘었다.
K-뷰티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조선미녀’, ‘티르티르’ 등 일부 인디 브랜드가 선진 시장 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는 K-뷰티 산업의 질적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본력과 기술력에서 대기업 대비 뚜렷한 우위를 갖지 못한 인디 브랜드들은 어떻게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하고 있는 것일까? 조선미녀, 티르티르 등 최근 약진 중인 인디 브랜드의 성공 사례를 통해 그 비결을 살펴본다.
조선미녀 : 선크림
팬데믹은 미국 소비자들의 화장품 소비 행태에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미국 소비자들은 색조 화장을 중시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 시간 증가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스킨 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SPF(Sun protection factor, 자외선 차단 지수)가 포함된 화장품, 그 중에서도 선크림에 대한 수요 증가다. 뷰티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선크림을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멀티 제품으로 인식하며 일상적으로 사용해 왔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러한 트렌드가 최근에야 시작되었다. 조선미녀는 이러한 미국 소비자의 달라진 니즈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응했다. 동양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미국 시장에서 한방 화장품 수요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쌀, 팥, 인삼 등 동양적 원료를 기반으로 한 제품, 특히 쌀을 강조한 선크림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 웠다. 또한 한방 화장품은 중년 여성용 고가 제품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가격을 낮춰 미국의 젊은 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조선미녀의 대표 제품 ‘맑은쌀선크림’은 트러블이 거의 없고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입소문을 타며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해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아마존 선크림 카테고리에서 1위 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티르티르 : 쿠션
“한국 쿠션은 색상이 아쉬워!” 지난 4월, 미국의 흑인 유튜버로서, 구독자가 300만 명을 넘는 미스 달시가 일본에서 국민 쿠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티르티르의 쿠션을 소개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한국의 쿠션은 가장 어두운 색상조차 흑인 소비자들에게는 너무 밝다는 지적이었다. 티르티르는 이러한 피드백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한 달 후, 티르티르는 흑인 피부 톤에 맞춘 어두운 색상의 쿠션 11개를 그녀에게 선물했고, 달시는 자신의 피부에 딱 맞는 색이라며 티르티르에 감사를 표했다.
이를 계기로 티르티르 는 30가지 색상으로 제품군을 확장하여 ‘흑인도 쓸 수 있는 제품’으로 포지셔닝하며, 미국 시장에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티르티르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은 괄목할 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미국 진출 1년 만인 올해 4월, 아마존에서 K뷰티 최초로 마스크핏 레드 쿠션으로 파운데이션 부문 판매 랭킹 1 위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6월에는 아마존 전체 뷰티 카테고리에서 한국 브랜드 중 최초로 색조 제품으로 1위에 올랐다.
K 뷰티 인디 브랜드의 뉴 전략
조선미녀와 티르티르 외에도 많은 인디 브랜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해 아마존 미국 전체 베스트셀러 토너 12개 중 5개, 마스크 12개 중 6개, 틴트 12개 중 4개가 K 뷰티 인디 브랜드 제품으로 나타났다.
이는 K 뷰티 인디 브랜드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들이 단기간에 글로 벌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① 인디 브랜드의 키워드 중심 기획력
“소비자들에게 어떤 기업으로 각인될 것인가?” 과거 대기업들은 자사만의 컨셉을 잡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반면 자본력이 약한 인디 브랜드들은 이러한 접근이 어렵다.
최근 인디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에게 자사를 각인시키기 위해 ▲ Newness를 제공하면서 ▲ 직관적인 ‘원료/제형/효능/효능 성분’ 중심으로 제품을 소구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들은 원료나 제형, 효능 등을 제품명에 직접 넣어 강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코스알엑스는 ‘스네일92올인 원크림’이라는 제품명으로 달팽이 점액 원료와 92% 함유량을 부각시켰다.
바이 오던스의 콜라겐 수면팩은 콜라겐이라는 효능 성분과 수면 중 사용 가능한 제형을 강조했으며, 우수한 밀착력과 최대 8시 간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내세웠다. 최근 소비자들은 원료와 효능, 효능 성분 등 구체적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제품 구매 전 사전 조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는 인디 브랜드의 키워드 중심 브랜드 정체성 구축 전략과 부합한다. 결과적으로 해당 전략은 인디 브랜드들이 제한된 자원으로도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했다.
② ODM 활용, 제품력과 출시 속도 동시 확보
인디 브랜드도 제품력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까다로운 화장품 세계에서 성공하기 어려웠 을 것이다. 인디 브랜드는 제품 개발과 생산을 직접 하지 않고 대부분 ODM(Original Development & Design Manufacturing, 제조자개발생산)에 의존한다.
주목할 점은 글로벌 3대 ODM(한국콜마, 코스맥스, 인터코스) 중 2곳이 국내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즉, K 뷰티 인디 브랜드의 제품력은 이들 ODM 기업의 기술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인디 브랜드는 ODM을 활용함으로써 제품 컨셉과 마케팅에 집중할 수 있으며, R&D, 기술력, 생산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고품질 제품을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K 뷰티 성공 사례인 조선미녀의 맑은쌀선크림, 코스알엑스의 스네일92올인원크림도 각각 한국콜마와 코스맥스가 제조했다. ODM 중 최대 매출(2조 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콜마는 3,000개 이상 의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위탁 개발생산을 통해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다.
이 기업은 원료, 제형, 향료, 패키징 연구 등 화장품 개발과 제조에 필요한 종합적인 R&D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핵 심 원료의 고용량 안정화 및 전달력 향상, UV테크놀로지의 발림성과 고착력 개선 등에 집중하고 있다.
ODM의 기술력은 인디 브랜드의 글로벌 성공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다. 덕분에 인디 브랜드가 제한된 자원으로도 고품질의 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③ 멀티브랜드 플랫폼과 SNS 등, 다각적인 고객 접점과 유통 전략
미국 뷰티 시장에서 마케팅 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틱톡, 세포라, 아마존’이라는 3가지 요 소를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고객 접점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K 뷰티 시장에도 적용된다.
K 뷰티의 1차 글로벌 도약기에는 고객 접점이 면세점에 집중되었으나, 최근에는 SNS, 온라인/오프라인 멀티브랜드 플랫폼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SNS는 우수한 컨텐츠 하나로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자본력이 약한 인디 브랜드에게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마케팅 도구다.
최근 소비 트렌드에서는 유사한 피부 고민을 가진 인플루언서와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아마존, 라쿠텐(일본), 쇼피(동남아) 등의 대형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주목 받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K 뷰티 브랜드를 한 곳에서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아마존은 인디 브랜드의 수출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뷰티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올리브영, 다이소 등 멀티브랜드 스토어가 중요한 소비자 접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리브영 매출의 60% 이상이 인디 브랜드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다이소는 화장품 카테고리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들 매장은 국내 관광 명소로 인기를 얻으면서 ‘인디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멀티브랜드 스토어에서 쇼핑을 즐기고, 귀국 후에는 전자 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해당 제품들을 재구매하며 SNS를 통해 입소문을 내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K 뷰티 인디 브랜드들은 자연스럽게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이러한 다각적인 고객 접점과 유통 전략은 인디 브랜드들이 제한된 마케팅 자원으로도 글로벌 소비자들과 효과적으로 접점을 만들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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