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및 탄핵 정국
한국은 재정에 타격을 입은 프랑스, 경제와 재정은 물론이고 시스템 밖에서 일을 키우고 있는 이스라엘과는 다른 상황이다. 한국 신용등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자.
한국 신용등급 영향
2025년 연간 국고채 금리 밴드(3년: 2.20~2.70%, 10년: 2.30~2.80%)는 유지한다. 이미 금리는 난국이 펼쳐지기 전부터 급격히 하락해왔다. 낙폭은 2004년 보다 작을 것으로 판단한다.
금리 흐름은 하반기 경기 개선세 전환, 정국 수습 국면 돌입 가정 하에 ‘연말 박스권 → 상반기 낙폭 확대 → 하반기 소폭 반등’을 예상한다. 현 시점에서 국고 3년, 10년 각각 2.55~2.65%, 2.65~2.75% 범위에서는 매수를 권고한다.
통화정책은 현재 기조가 유지될 전망이나 ‘경제에 집중하고, 사전적으로 대응하 겠다’는 최근 한국은행의 정책 스탠스 변화를 볼 때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1, 3 분기에서 1, 2분기로 상반기에 인하가 집중될 가능성이 커졌다.
추경은 10~20조원대 규모라면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다. 지출 확대 여력은 있다. 일시적인 부채 증가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준은 아니다. 작금의 상황은 추경의 충분한 명분이다.
1. 신용등급 평가방법
신용등급(ICR, Issuer Credit Rating)은 채무자가 민간(commercial) 채권자에게 채무 상환 등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등급화 한 것이다.
S&P의 신용평가 방법론에 따르면 국가 신용등급(Sovereign Rating)은 다섯 가지(구조· 시스템, 경제, 대외, 재정, 통화) 분야 평가에 기반해서, 신용등급을 부여한다. 다른 주요 신용평가사들도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평가한다.
구조·시스템(Institutional)은 경제와 정치적 충격에도 국가 공공재정 시스템의 지속가능성, 균형잡힌 경제 성장 여부 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와 자료, 유관기관들의 투명성 및 접근성, 과거 부채 상환 이력, 잠재적인 국내외 안보 위험 등이 포함된다.
간단히 보면, 그 국가의 전반적인 체계가 잘 잡혀있는지를 평가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와 군사력도 강력하고 재정도 견실하지만 크고 작은 테러에 시달리거나 정치적인 부패가 만연한 국가의 구조·시스템 점수는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지만 별 탈없는 나라보다 낮을 것이다.
경제(Economic) 분야는 한 국가의 1인당 GDP, 조세 제도 및 정부의 세입 기반, 향후 성장 가능성과 산업의 다각화 및 변동성 등을 통해 평가한다. 신용평가에 있어 한 나라의 경제는 총량(GDP)보다는 질(1인당 GDP, 산업 다각화 등)이 중요하며, 정부의 자금 조달이 얼마나 탄탄한지가 중요하다.
대외(External)은 외국인에 대한 국가의 부채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중점적으로 보는 포인트는 국제 결제에 있어 해당 국가의 통화 범용성, 외환보 유고(External Liquidity)와 대외 순채권 또는 채무국(External Position) 등 크게 세 가지다. 기축통화국이라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재정(Fiscal)의 경우 한 나라의 부채 부담과 재정적자(또는 흑자)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한다. 재정 융통성(Flexibility), 장기 재정 추세와 취약 정도, 부채 구조 (만기 등)와 자금 조달 용이성(Funding Access) 그리고 잠재적 우발 채무 리스 크 등을 중점적으로 본다. S&P의 경우 재정은 능력(performance and flexibility) 과 부채 수준(debt burden)으로 분리해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통화(Monetary)는 중앙은행 등 관계당국의 정책 운영, 위기 대응 능력 등을 평가하는 부문이다. 환율제도, 통화정책 신뢰성과 효과, 금융시장의 성숙도 등을 분석한다.
평가가 끝나면 점수를 매긴다. 1~6점이며 만점이 1점이다. 상술한 다섯 항목은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구조·시스템과 경제는 ‘펀더멘털(Institutional and Economic Profile)’로, 대외, 재정과 통화는 ‘대응능력(Flexibility and Performance Profile)’로 묶인다. 펀더멘털의 경우 1.0~2.0점, 대응능력은 1.0~2.7점까지가 AAA등급 요건이다
두 항목에 대한 평가를 종합하면 정량 평가등급(Indicative Rating Level)이 나온다. 이후, 신용평가사들은 정성적 요인들을 감안, 정량등급에 +/- 1 notch를 조정(필수는 아님)하고 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용등급(Foreign-Currency Credit Rating)이 산출된다.
2. 한국 신용등급 부여 근거
현재 우리나라 신용등급은 AA-(S&P: AA(안정적), Moody’s: Aa2(안정적), Fitch: AA-(안정적))다. S&P 신용등급 기준 한국과 동일 신용등급을 부여 받은 국가는 영국, 카타르 등 16개국이 있다. 참고로 중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두 계단 낮은 A+다.
지금까지 한국의 강점은 동일 Peer 국가 대비 높은 경제 성장률 추세와 경쟁력 있는 산업 보유, 그리고 IMF 위기 이후 유지되는 엄격한 재정정책 관련 기조다. 비록, 코로나를 거치며 부채 부담은 크게 늘어났지만(S&P: 4점) 여전히 재정 능력은 최고점(1점)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약점은 북한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다. 실제 우리나라 신용등급의 상·하향 Trigger는 대부분 북한 관련 내용들이다. 북한 위협이 유의미하게 줄어들면 상향, 증대하면 하향 조정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태생적이고 극복할 수 없는 취약점을 경제와 재정으로 상쇄하고 있다.
S&P는 한국의 펀더멘털(Institutional and Economic Profile)에 대해 1) 북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높은 소득과 경제성장세를 구가 중이며, 2) 산업구조 다각화로 꾸준한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고, 3) 향후 3~5년 동안은 비슷한 소득 국가들 보다 높은 성장률이 전망된다고 평가한다. 다만, 강력한 구조·시스템 (Institutional)에도 불구하고, 북한 리스크를 잠재적 취약 요인으로 보고 있다
대응능력(Flexibility and Performance Profile)은 1) 견조한 정부와 대외자산 대차대조표, 2) 2~3년 간 작은 규모 재정적자 지속 전망과 함께 3) 높은 통화정책 신뢰도, 4) 활발하게 통용되는 원화(KRW) 등을 강점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약점은 펀더멘털과 마찬가지로 북한(관련 우발 채무 증가 가능성)이다. 이 밖에 증가한 정부와 공공기관 부채 부담도 부정적 요인으로 뽑았다.
이를 바탕으로 S&P는 1) 최소 3~5년 동안 고소득 국가 대비 높은 성장률이 유지되고, 2) 재정적자는 3년간 낮은 수준일 것이며, 3)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헤칠 정도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판단하며 향후 신용등급은 현재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용등급 하향 조정 시나리오로는 북한 리스크 증가로 한국 경제와 재정, 교역에 심각한 타격이 있거나, 평균 소득이 비슷한 수준 국가들보다 크게 하락할 경우 두 가지를 제시했다. 상향 Trigger로는 북한 위협 감소와 함께 대북제재 완화로 북한 경제와 세계 경제 간 연결고리가 강화될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3. 신용등급 조정 사례
선진국의 정치적 충격이 국가 신인도에 충격을 주려면 1) 해당 사건이 재정과 경제와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거나, 2) 이벤트가 그 국가의 시스템과 제도 바깥에서 발생해야 한다. 최근 주요국 중에서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나라는 프랑스와 이스라엘이 있다. 프랑스는 1번, 이스라엘은 1번과 2번 모두 해당된다.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2024년 6월 1일 S&P, AA → AA-)은 정쟁으로 인해 여러 정책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서 재정에 악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S&P는 ‘대규모 재정적자로 종전 예상보다 더 늘어날 전망’을 등급 하향 조정 사유로 설명했다.
신용등급 조정 이후에도 여러 정치적 이벤트들(6월 9일 마크롱 대통령 조기 총선 선언, 6월 30일 + 7월 7일 조기총선, 12월 5일 하원 총리 불신임안 가결)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의 첫 신용등급 조정은 전쟁 장기화로 경제와 재정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이루어졌다. 2024년 2월 Moody’s는 ‘분쟁이 이스라엘 행정부와 입법기관, 재정 능력을 약화시켰고, 부채부담이 전쟁 전 예상보다 높아질 전망’을 이유로 이스라엘 신용등급을 A1에서 A2로 하향 조정했다.
이후 6월 말(Moody’s, A2 → Baa2) 전쟁이 정당한 ‘자위권’을 넘어서는, 2번 사례에 해당되면서 추가로 강등되었다. 추가 강등 이유는 ‘지정학적 위험이 상당히 심해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신용도가 장, 단기적으로 모두 실질적인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쟁이 빠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끝났다면 신용등급에는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침공(2023년 10월 7일)과 첫 신용 등급 강등과는 약 4개월 시차가 존재한다.
4. 대외 신인도 영향
금번 비상계엄 및 탄핵 사태가 신인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신용등급도 유지될 것 으로 예상한다. 계엄도, 탄핵도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이 규정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 권한이 있고, 의회는 대통령을 포함한 여러 정부 인사들의 탄핵을 소추할 수 있는 탄핵소추권이 있다.
대통령은 본인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고, 이후 국회의 요구안을 수용한 것은 계엄 해제의 ‘절차’에 따라 시행되었다. 국회 역시 그들의 ‘권한’을 통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일련의 사건들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시스템 테두리 안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금융당국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도 위기관리 능력을 입증했다.
신용평가사들 입장에서 지금 사태는 ‘예상치 못한 안 좋은 일’이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은 아니다. 한국은 재정에 타격을 입은 프랑스, 경제와 재정은 물론이고 시스템 밖에서 일을 키우고 있는 이스라엘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길어지면 외국인들의 우려가 커질 수 있다. 환율 추가 상승, 자금 유출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한국의 대외(External) 부문은 최고점인 1점으로, 매우 강력하다. 국내로 들어오는 외화 없이도 6.5개월가량 자금 유출을 방어할 수 있고, 경상수입 대비 단기 대외부채 비중은 28.8%다. 외국인 심리 약화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니고 있다.
정치적 이슈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것이 추경이다. 정국의 전개 방향과 무관하게 2025년 상반기 중 추경예산 편성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한다. 10~20 조원 사이에서 편성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경기침체(금융위기, 코로나) 국면을 제외한 연 평균 추경 편성액이 6.8조원이니 이보다는 확실히 많고 지금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2017년 정권교체 직후(11조원)보다도 많을 공산이 크다.
추경예산 편성은 재정 여력을 약화시키겠지만 결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코로나를 거치며 한국의 부채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재정 능력(Fiscal, Flexibility and Performance)은 최상위 수준을 유지 중이다. 부진한 경기 대응이라는 명분도 있으니 재정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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