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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첫 교황(프레보스트), 레오 14세는 누구인가, 프레보스트의 생애와 사목 철학

00년 새내기 2025. 5. 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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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첫 교황(프레보스트)

미국 출신 첫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 본명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페루에서 오랜 사목 활동을 펼친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출신입니다.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으로 알려진 그는 가난한 이웃과의 연대를 중요시하며, 교회의 개혁과 포용적 변화를 이끌어 갈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의 생애, 사목 철학, 교황직의 방향성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의 생애

 

프레보스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교황은 1955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앙심 깊은 환경에서 자란 그는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성적을 보이며 성장했다.

 

Villanova University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1977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1년에는 수도회에 정식 서원을 한 뒤 같은 해 사제품을 받았는데, 이는 프레보스트가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사제로서의 초기 활동은 곧 중남미 선교로 이어졌다. 1985년 프레보스트 신부는 페루 선교사로 파견되었고,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페루 현지에서 가난한 이웃과 원주민 공동체를 섬겼다. 그는 1999년까지 페루에서 주로 활동한 후 2001년부터 2013년까지는 수도회 전 세계를 관할하는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어 세계 아우구스티노회의 리더로 봉사했다.

 

신학생과 동료 사제들을 격려하며, 겸손과 웃음을 잃지 않는 따뜻한 목회자로 알려졌다. 그는 동료 성직자들과 함께 매일 기도와 식사를 하는 소박한 일상으로 유명했으며, 동료 신자들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항상 유머와 기쁨을 유지한다”고 회상할 만큼 친근감을 보였다.

 

프레보스트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페루 북부 치클라요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페루 칼라오 교구장직도 겸임하며 현지 교회를 이끌었고, 아시아나 유럽을 방문해 지역 교회 지도자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지며 사목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페루에서 보낸 시간이 그의 신앙과 사목 전통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치클라요 교구에서 주교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지역 사회의 복음화와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을 일상 사목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이후 치클라요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지도력을 기반으로 프레보스트는 라틴아메리카 가톨릭 교회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떠올랐다.

 

프레보스트 추기경

 

 

프레보스트 추기경 사목 활동

프레보스트 교황은 남미에서의 오랜 사목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5년 페루 선교를 시작으로 거의 15년 동안 페루 현지에서 봉사했으며, 2014년 교구장으로 임명된 이후에도 치클라요 지역 공동체와 긴밀히 교류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가톨릭 교회가 여전히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한 만큼, 현지에서의 그의 봉사는 큰 의미가 있었다. 특히 그는 농촌과 도시 빈민층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고, 교회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몸소 실천했다.

 

신학적으로는 겸손과 섬김을 강조하는 영성을 추구했다. 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출신답게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에 깊이 공감했다.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첫 연설에서 “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도 이를 보여준다.

 

또한 언론 인터뷰에서 “권위의 진정한 의미는 섬김에 있다”고 강조했고, 교회의 지도자는 수도원적 은둔이나 폐쇄가 아니라 신도들과 함께 걷는 자세로 사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주교에게는 “하느님과 교회 구성원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친근함”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폐쇄적인 권위주의를 경계했다. 이처럼 프레보스트 교황은 교회가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영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신학적 관심을 가졌다.

 

그는 2023년 바티칸으로 돌아와 교황청 중남미 담당 위원회(Pontifical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의장과 교황청 주교성(이전 주교 임명 및 감독 부서)의 수장을 맡아 중남미 교회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 교회가 직면한 빈곤, 인권, 종교다원주의 등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깊이 관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현지 사제들의 영적 양성과 공동체 강화에 힘을 쏟았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참여를 확대하는 개혁 정책을 추진했을 때 프레보스트는 이를 지지하여, 교회 내 포용성과 현대적 사목 방식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요약하면, 프레보스트 교황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사목 경험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겸손한 리더십을 실천했으며, 교회 일치와 봉사를 신학적 가치로 삼았다.

 

프레보스트 추기경 사목 활동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인연 및 추기경 임명 과정

프란치스코 교황과 프레보스트 교황은 오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교황은 2014년 프레보스트를 치클라요 교구장으로 발탁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의 신뢰는 더욱 깊어졌는데, 2023년 교황은 프레보스트를 바티칸으로 초청해 교황청 주교부 장관(주교 임명과 감독을 담당하는 막강한 요직)에 임명했다.

 

당시 교황은 “교회 내 근무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 아니라 현장 사목을 잘 아는 선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계기로 프레보스트는 전 세계 교회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며 명성을 쌓았고, 2025년 초에는 교황청 내 추기경단의 최상위 계급으로 승급되기도 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레보스트에게 크게 신임을 보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였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인연은 프레보스트의 지도자로서의 성장과도 직결된다. 교황은 우선 교회 중요 보직을 맡기고,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도 겸손한 실천력과 분별력을 갖춘 그를 교회의 핵심 역할에 기용했다.

 

프레보스트 자신도 “교황께서 특별히 나를 선교사로 선택했다. 교회 중심부가 아니라 교구 현장을 아는 인물을 바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교황의 후광을 받아 로마로 돌아온 프레보스트는 교황청 내에서 ‘유력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다. 그의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는 이후 교황 선출 과정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교황 선출 배경과 콘클라베 과정의 의미

2025년 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으로 카톨릭 세계는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를 소집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이번 콘클라베에는 전 세계 133명의 선출권 추기경 중 23명이 라틴아메리카 출신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사흘간 투표를 반복한 끝에 4차 투표에서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특히 프레보스트의 선출은 ‘미국 출신 교황은 불가능하다’는 관습을 깨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시카고 태생이지만 페루에서 오랜 사목 경력을 쌓고 페루 시민권까지 취득한 이중 국적자였기에, 교황단은 미국과 중남미 양쪽을 아우르는 인물로 그를 주목했다.

 

결국 교황은 ‘레이오 14세(교황 레오 14세)’를 자처하며 “평화를 빕니다”라는 첫 인사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콘클라베가 끝나는 순간, 성 베드로 광장에는 수십만 명의 신자와 순례자가 모여 있었다. 백색 연기가 굴뚝에서 올라오자 사람들은 “비바 일 파파!”를 외치며 환호했고, 사제와 수녀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 교황 선출은 단순한 한 인물의 취임을 넘어 세계 가톨릭 교회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교황은 미국과 페루의 영적 전통을 함께 상징하며, 서구와 비서구 교회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한편 2일 만에 이루어진 콘클라베 진행 방식은 전임 교황 선출 때와 유사했지만, 프레보스트의 등장은 그 결과 자체로 큰 의미를 지녔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례적인 선출을 통해 새로운 교황이 미국과 중남미 양쪽의 고민을 동시에 대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교황 즉위 후 첫 메시지와 소통 방식 

교황으로 즉위한 레오 14세는 즉각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서 첫 연설을 시작했다. 로마 시간으로 오후 7시 23분, 그는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이탈리아어 인사말로 신자들을 맞이했다.

 

이어서 자신을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고향을 향해 함께 걸어갑시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첫 담화는 그의 목회 방향을 잘 보여주었다. 즉위 연설에서 그는 화합과 연대를 강조했고, 기독교 공동체가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희망했다.

 

교황이 선택한 교황복(붉은 망토 등 전통 예복)도 눈길을 끌었다. 이는 자신의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전통적 의전적 요소를 존중하는 자세로 해석되었다.

 

소통 방식에서도 프레보스트 교황의 인격이 드러났다. 그는 평소 동료 신부들과 아침을 함께하며 격의 없이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직후 언론에 나타난 모습에서도 차분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신자들과 눈을 맞추었으며, 감회를 담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언어 능력도 강점이다. 교황은 영어와 스페인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5개 국어 이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전 세계 신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향후 그는 성경 공부모임, 시노드(전 교회 대표자 회의), 미사 강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자들과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것처럼, 레오 14세 역시 고정된 권위가 아닌 따뜻한 목회적 보살핌으로 신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미국 사회와 가톨릭계의 반응 및 정치적 상징성

새로운 교황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미국 언론은 “천년 역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이라는 표현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다양한 반응이 뒤따랐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와 주요 주교들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프레보스트 교황 선출을 축하하며 “미국 가톨릭 공동체에 새로운 희망”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 내 히스패닉 교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용적 전통을 계승할 교황의 등장을 반겼다. 한 히스패닉 공동체 지도자는 “우리를 대변할 다음 교황이 프란치스코처럼 이민자와 함께 서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교황이 이민자와 사회 약자 편에 설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 발언이다.

 

반면 보수 성향의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의 정책 방향에 대해 신중한 시각을 보였다. 그들은 앞으로 교황이 낼 메시지가 미국 국내 정치나 생명윤리, 사회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미국 정계에서는 공식적인 언급을 삼가면서도, 몇몇 정치인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교황의 등극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한편 프레보스트 교황이 미국과 페루의 이중 국적자라는 점은 정치적·상징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대 카톨릭 인구가 거주하는 중남미에서의 경험을 가진 미국 출신 교황의 등장은, 교회가 더 이상 유럽 중심이 아님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전문가들은 그의 등장이 미국 사회에 “교회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목소리를 낸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분석했다. 즉 미국인의 교황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양쪽 교회 공동체에 교회 통합의 새 장을 예고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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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교황직 방향과 개혁 의지

교황 레오 14세가 앞으로 걸어갈 방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장선상에 서 있을 전망이다. 우선 그는 교황명으로 ‘레오(Leo)’를 택했는데, 이는 19세기 교황 레오 13세의 사회 교리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레오 13세가 노동자 권리와 빈곤 문제에 천착했던 것처럼, 레오 14세 역시 사회 정의와 연대의 가치를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지금까지 인권과 복지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으며, 기후 위기와 환경 보호 같은 세계적 과제에도 교회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교황으로서 개혁 의지도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이미 그는 교회 내 폐쇄적인 성직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권위는 봉사”라는 신념을 몸소 실천해 왔다. 앞으로도 주교와 사제들에게 영적 동반자로서 소명을 상기시키고, 평신도와 여성의 참여 확대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하던 교황청 개혁과 투명성 강화 기조를 계승하여, 교회 행정의 효율성과 소통 채널을 현대화하려 노력할 것이다. 또한 각국 교회가 신자 교육과 복음 선교에 힘쓸 수 있도록 지원하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 간의 연대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프레보스트 교황은 비교적 젊은 나이(1955년생)로 오랜 재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향후 변화의 폭이 크다. 그는 과거에 누렸던 권력이나 위상이 아닌 믿음의 본질에 집중하면서도, 기술과 미디어 시대에 맞는 소통 방식에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교황 재임 기간 중 대규모 전 세계 시노드(대표 회의)나 디지털 매체를 통한 신자들과의 토론을 확대할 수도 있다. 이처럼 프레보스트 교황은 그의 신앙과 리더십 경험을 토대로 교회 내부의 단합과 사회 정의 실현, 세계 공동체와의 대화를 중심 과제로 삼아 교황직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그의 등장으로 교회는 새 시대의 도전에 응답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것이며, 프레보스트 교황 스스로도 ‘자비의 교황’ 프란치스코의 뒤를 이어 미래 지향적 개혁을 실현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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